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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명소

"농촌과 도시가 함께 자라고 행복해지도록 동래농협이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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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패총

• 문화재정보 : 사적 제 192호
• 지정일 : 1970.04.25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낙민동 100-18번지
• 기본정보 :
부산지방에서 유일하게 지정·보호하고 있는 삼한시대 패총이다.
동래패총은 1930년 철도공사 때 4개의 옹관(甕棺)이 발견되면서 알려졌고, 1967~69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3회에 걸쳐 발굴조사를 하였으며, 1992년에는 정화 공사 때문에 부산시립박물관에서 부분적으로 발굴하였다.
출토유물은 주로 토기(土器), 골각기(骨角器), 철기(鐵器)가 주류를 이루며 석기(石器)는 거의 없었다.
동래패총의 존속 시기는 대체로 3~4세기 전반경으로 추정되며, 특히 유물의 양이 많고 그 질도 우수하기 때문에 동래지방에 강력한 정치적 집단이 출현하는 전환기에 형성된 생활유적이라 할 수 있다.
1992년 부산시에서 정비사업을 실시하여 삼문 건립, 안내판 설치 등 현재의 모습으로 말끔히 단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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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 문화재정보 :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7호
• 지정일 : 1972.06.26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 838번지
• 연락처 : 051-523-4233
• 홈페이지 : http://cys.busan.go.kr
• 기본정보 :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 공을 모시기 위해 1605년(선조 38) 당시의 동래부사 윤훤(尹暄)이 동래읍성 남문 근처의 농주산에 송공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그 시초이다.

그 후 1624년(인조 2) 선위사(宣慰使) 이민구의 청으로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1652년(효종 3) 동래부사 윤문거가 당시의 사당이 좁고 저습하며, 성문이 가까이 있어 시끄러워 위치가 적당하지 않다는 점과 송상현 공의 학행과 충절은 후학의 사표가 되므로 그 학행과 충절을 선비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안락동 현 충렬사 자리로 이전하면서 사당을 창건 한 후 강당과 동·서재를 지어 안락서원이라 하였다.
그러나 일제시기 서원에서의 교육과 함께 동래의 유림에 의해 매년 2월과 8월에 봉행되는 제향이 민족정기를 북돋운다고 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방해를 가했기 때문에 일제 36년을 거치는 동안 서원과 사우(祠宇 : 신주를 모시기 위해 따로 지은 집)는 보수를 하지 못하고 낡아 허물어져 갔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정화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 규모로 정화한 후 임진왜란 때 부산지방에서 순절하거나 공을 세운 모든 선열의 위패를 직책 또는 증직(曾職)의 순서에 따라 92위의 신위를 모셨다. 현재 매년 5월 25일에는 부산시민 모두의 정성을 모아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1592년 왜적이 동래읍성으로 쳐들어와 길을 빌려 달라(항복하라)고 하자 송상현 공이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라는 글을 나무판에 써 적진으로 던지고,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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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향교

• 문화재정보 :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6호
• 지정일 : 1972.06.26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235, 321-1번지

• 기본정보 :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재정에 의해 설치·운영된 공립 중등학교격인 교육기관으로 성현(聖賢)을 제사 지내는 제향(祭享) 기능, 유생에게 유학을 교육하는 교학(敎學) 기능과 함께 지방의 문화향상 등 사회교화 기능도 갖고 있었다.

1392년(태조 원년)나라에서 교육진흥책을 위해 지방에 향교를 설립함에 따라 동래에도 동래향교가 설립되었다고 생각되나, 임진왜란 때 동래성 함락과 함께 불타버렸다.

1605년(선조 38) 동래부사 홍준(洪遵)이 재건한 이후 여러 차례 옮겼다가 1813년(순조 13)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규정을 보면 동래향교에는 종6품의 교수 1명과 학생 70명이 있으며, 향교의 유지와 관리를 위해 학전(學田) 7결(結)이 지급되었다. 향교의 건물구조는 명륜당(明倫堂)을 중심으로 반화루(攀化樓), 동재(東齋), 서재(西齋)로 구성된 강학공간(講學空間)과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동무, 서무와 내·외삼문, 사주문으로 구성된 제향공간(祭享空間)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자(孔子) 이하 중국의 저명한 유현(儒賢) 7분과 우리나라의 유현 18분을 모시고 있는 대성전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유림(儒林)들에 의해 석전대제(釋奠大祭)가 봉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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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지

• 문화재정보 :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5호
• 지정일 : 1972.06.26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 복천, 칠산,명장,안락동 일원

• 기본정보 :
동래읍성지는 동장대가 있는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서장대가 있는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 동래 시가지 중심지역인 평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세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축조되어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읍성이다.
고려 말 우왕 13년(1387)에 수축(修築)된 것으로 보이는 동래읍성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 공을 위시한 모든 군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장렬한 전투를 벌였던 임란초기의 최대 격전지이다.

임란 이후 부분 보수되어 온 성을 1731년(영조 7)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과거의 성보다 훨씬 규모가 크게 고쳐 쌓았는데, 이 성이 현재 흔적으로 남아있는 읍성의 기원이다.
읍성에는 동문, 서문, 남문, 북문, 인생문(人生門) 및 암문(暗門)이 있고 각 문에는 문루(門樓)가 있었는데, 동문에는 지희루(志喜樓), 서문에는 심성루(心成樓), 남문에는 무우루(無憂樓), 암문에는 은일루(隱一樓)가 있었다. 또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익성(翼城)을 두고, 문은 앞의 세병문(洗兵門)과 뒤의 주조문(朱鳥門)이 있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서문·동문·북문 등 다른 문에는 성문 보호를 위해 옹성을 부설하였고, 장대, 망루 및 15개소의 보루를 갖추고 있었다.

일제 때 <시가지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벽은 철거되었으며,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벽도 민가가 점유하여 마안산을 중심으로 한 산지에만 성곽의 모습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었다.
부산광역시에서는 현존하는 성지(城址)를 중심으로 훼손·방치되었거나 유지(遺址)가 확인되는 곳을 보수·복원하고 있고, 동래구에서는 남문(하나은행 수안동지점 옆), 서문(KT동래지사 옆), 동문(동래고교 정문 앞), 암문(동래구청 맞은편)의 옛터에 표석을 세워 문화유적지의 원위치를 보존하며, 교육적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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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지

• 문화재정보 : 사적 제273호
• 지정일 : 1981.06.09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50번지 일대

• 기본정보 :
현재 동래 중심가 북쪽에 반달모양으로 에워싸고 있는 마안산(속칭 대포산)의 중앙부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는 부산의 가장 대표적인 고분군이다.
복천동고분군은 1969년 주택공사로 고분군의 일부가 파괴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후 1995년까지 부산대학교박물관과 부산시립박물관을 중심으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지금까지 긴급 및 정식발굴을 통해 조사된 유구는 모두 169기에 달하며, 출토유물은 총 10,000여점이다.

출토유물에는 토기류 3,000여점, 철기류(금속류 포함) 3,000여점, 장신구류 4,010여점, 골각제(骨角製) 등 기타 유물 10여점, 인골(人骨) 5구, 말 이빨 등 동물유존체 7점 등이 있다.

경주지역과 같은 화려한 금은제(金銀製) 유물은 많지 않으나, 대신 철제유물이 많은 것이 특징인데, 그 중에서도 무구류(武具類)가 특히 많아 주목받았다.
토기로는 보물 제 598호인 마두식각배(馬頭式角杯), 오리모양토기, 등잔모양토기, 신발모양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한편 방어용 무기인 갑주류(甲胄類, 갑옷과 투구)는 복천동고분군의 중요한 유물로서 우리나라 갑옷 연구 및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복천동고분군은 경주의 대형 고총고분(高塚古墳)을 제외하고는 함안의 말이산·도항리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과 더불어 남부지방의 큰 고분군 중의 하나이며, 유물은 경주의 대형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 다음으로 많은 양이 출토되었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부산광역시와 동래구에서는 1982년부터 정화사업을 통해 고분군을 조성하고, 유물전시관 및 야외전시관을 통해 출토유물 및 발굴장면을 전시하고 있다.

 
<출처:동래구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tour.dongna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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